6시 20분의 남자는 '데커 시리즈'로 유명한 데이비드 발다치의 작품으로, 트래비스 디바인이라는 전직 육군 레인저를 새로운 주인공으로 내세운 작품이다. 이야기는 디바인이 모종의 이유로 전역 후 대학에 진학해 MBA를 졸업하고 카울앤드컴리 투자회사에서 말단 애널리스트로 근무하다 사내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에 휘말리는 것으로 시작된다.
시리즈물을 시작하는 책들이 이레 그렇듯, 디바인이라는 캐릭터의 특징을 표면적으로는 상세하게 표현하지만 내면에 숨겨진 이유는 궁금증으로 남겨두며 책의 도입부를 시작하는데, 이 도입부가 상당히 지루해서 처음엔 책을 마저 읽을까 말까 많이 망설였다.
하지만 여러 베스트셀러를 쓴 스릴러 작가라 그런지 이후 사건이 시작되고 나서 이야기가 흘러가는 전개는 정말 흡입력 있고 흥미진진하게 전개되는데, 독자에게 남기는 궁금증은 크게 3가지로 전개된다. 첫 번째, 디바인이 다니는 회사 카울앤드컴리의 이면에 숨겨진 비밀. 두 번째, 사내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이 카울앤드컴리와 어떤 문제로 엮여있는지에 대한 의문. 그리고 세 번째, 디바인을 둘러싼 주변 인물들의 이면에 숨겨진 목적.
따로 놀면 자칫 이야기를 지루하게 만들 수 있는 세 가지의 소주제가 유기적으로 엮이면서 독서를 멈출 수 없는 흡입력을 주었다. 다만, 이야기의 흐름 내내 디바인은 특정 인물을 범인으로 의심하는데, 이 사람을 범인으로 의심하는 것에 대한 개연성이 부족한 점은 큰 아쉬움으로 다가왔다. 범죄에서 증거가 없을 경우 다음으로 먼저 집중하게 되는 것이 바로 범행 동기인데, 디바인이 스스로 단정 지었던 범행 동기가 디바인이라는 캐릭터가 이야기 내내 보여준 판단력에 비해 뒤쳐진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독자의 시선을 집중시키기 위해 특정 캐릭터에 혐의를 지우고 이후 범인에 반전을 주는 스토리 플롯은 추리/미스터리/스릴러 소설에서 이제는 당연한 구성이 되어 변주를 주기 힘든 것이 되었지만 그래도 디바인이라는 의심 덩어리 캐릭터의 매력을 살리려고 했다면 그의 성격을 반영해 범인을 한 명으로 단정 짓지 않고 여럿을 의심하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어떨까 싶다. 사실 이런 불만은 어쩌면 추리/미스터리/스릴러 소설을 너무 많이 읽은 독자의 과다추측일지도 모르겠지만...
디바인이라는 캐릭터의 배경 설정 상 이야기는 하드보일드 형식의 구성을 띨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하드보일드 캐릭터보다는 제프리 디버의 링컨 라임 시리즈의 링컨 라임에 가까운 낭만파 + 하드보일드 캐릭터의 일부 성격이 채용된 전형적인 현대 미국 스릴러 소서의 주인공 캐릭터같은 느낌에 가까웠다. 무엇이든지 의심하고 냉철하게 보려는 성격, 하지만 그를 진심으로 도와주는 사람에게는 따뜻함을 잃지 않으며 내면에선 여러 죄책감으로 스스로를 자책하는 디바인은 아주 현실적이라 캐릭터 자체에는 정말 높은 평가를 주고 싶다. 사람 사이의 관계를 냉정히 보는 듯 하지만, 그 사람에게 도움이 된다고 믿을 땐 돕기를 주저하지 않는 그의 방식은 마치 히가시노 게이고의 가가 교이치로 형사의 미국 버전을 보는 느낌이었다.
근래에 나온 소설답게 IT와 금융업계에서 일어나는 여러가지 실제 문제들 그리고 음모론을 다루고 있는데, 이 역시 우리가 현대 사회에서 경계해야 할 문제가 현실적으로 다뤄진 것으로 느껴져서 아주 맘에 드는 부분 중 하나였다. 음모론은 자칫 잘못하면 스릴러 소설이 판타지 소설처럼 느껴질 수 있는 양날의 검같은 장치인데, 우리가 디지털 장치를 사용하면서 느낄 수 있는 위협들을 현실적으로 잘 던져주었다. 좀 더 일반인들의 생활에 근접한 댄 브라운 같은 느낌. 다만, IT 계열에 지식이 전무한 독자라면 윌 발렌타인, 탭쇼 등과 이야기하는 디바인의 대화 주제가 잘 이해되지는 않을 것이라, 가독성 측면에서는 좀 아쉬운 점이었다.
결말은 위에서 얘기했듯 반전을 주지만, 의심 넘치는 독자라면 예상 못할 결말은 아니다. 다만 결말에선 흥미가 팍 식을 수도 있다.
종합적으로 보자면, 캐릭터의 매력과 스토리 전반은 아주 훌륭했고 IT 관련 지식이 있다면 더욱 재밌게 볼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하지만, 이야기를 마무리 짓는 결말은 좀 아쉬웠으며(사실 현대 추리/미스터리/스릴러 소설 모두가 겪는 문제가 아닐까 싶다. 이야기의 중반부는 재밌는데, 결말에선 한숨이 나오는...) 이야기에서 정해진 인물을 강제로 의심하게 하는 기분이 드는 아쉬운 개연성(이건 큰 단점은 아닌게, 독자에 따라선 개연성이 괜찮다고 볼 수도 있고, 딱히 이야기의 몰입에 방해가 될 정도는 아니었다.)이 몰입을 일부 방해하는 부분이었다.
아무튼 결론은, 미국식 미스터리/스릴러 장르에 거부감이 없다면 이 책, 추천한다!